해방의 8·15에서 통일의 8·15로

[여성신문]2002-08-23 00면 4359자

이모저모8월 14일 예정시간보다 늦게 행사장에 도착한 북측대표단들이 호텔직원 및 내외신 기자들의 환영의 박수를 받으며 무궁화홀로 입장하는 순간 남북은 일단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출발이 늦어지면서의 불안감을 일단 씻은 것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북측대표단들은 손에 든 한반도기를 흔들며 남측 환영단의 박수에 화답했다.

하늘색, 주황색 등 밝은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식사가 마련된 워커힐호텔 무궁화홀에 입장하는 여성 예술단원들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반갑습니다. 행사장에서 뵙겠습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후 5시 10분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환영공연은 려원구 의장의 려운형 선생 묘소 참배 문제를 놓고 북측과의 협상이 늦어지는 관계로 두 시간이 지나서 시작됐다. 환영공연장 앞에서 북측주석단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남측 주석단은 행사가 예정보다 늦어지자 마냥 기다리게 하는 주최측에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예정보다 늦게 시작한 환영만찬장은 오랜시간 기다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마치 반가운 가족 친지와 재회의 장을 방불케 했다. 그동안 실무단 접촉으로 이미 잘 알고 있는 남북인사들은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 포옹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문난영 세계평화여성연합 세계본부 회장은 리순희 민화협 과장, 안성희 여맹 중앙위원회 과장, 박영희 민화협 과장, 허혁필 민화협 부회장 등 북측 대표단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문 회장은 “지난번 남북행사때 1주일을 같이 ?립뻗? 정이 많이 들었고 그 때 내가 “꼭 서울에 오세요”라고 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환영만찬장에서 나를 보고 “약속지켰죠”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고 전했다.

고기효 통일여성협의회 회장은 김지선 북한 중앙위원, 리창덕 민화협 사무소 소장 및 북측 무용단과 자리를 함께 해 통일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며 무용단 여성들이 매우 순수하고 맑으며 때가 묻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한 북측여성에게 결혼여부를 묻자 “통일하는 남자면 다 괜찮다”는 대답에 남측의 한 기자가 다가와 “저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어 한바탕 웃음꽃이 피기도 하는 등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79년생 장연희 지도원에게 쏟아지는 취재진의 관심은 높았다. 9월 청년대회를 앞두고 청년 부문 상봉모임에 참여할 예정인 장연희 지도원은 북한여성들의 지위에 대해 묻자 “요즘은 능력만 있으면 높은 위치에 오르지만 북한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꽃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문화 행사들
행사 기간 중 열렸던 문화행사들도 우여곡절 끝에 진행됐다. 15일 개막식 이후 남과 북이 함께 워커힐호텔 내 제이드 가든에서 단결 놀이마당을 펼치기로 했으나 개막식 행사가 한시간 이상 늦어지는 바람에 취소돼 참석자들의 아쉬움을 남겼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잔디밭에서 북측 대표단들을 기다리며 열심히 연습했던 함께 부르는 노래‘우리는 하나’도 결국 남측 대표단들의 연습으로만 끝나야 했다.

개막식 이후 열린 합동예술공연에서도 함께 부르기로 한 아리랑 합창이 생략된 채 북측 예술단원들은 SBS가 코엑스 오디토리움에 마련한 북측예술단 공연 방송을 위해 급히 출발했다.

15일 행사시간보다 1시간30분 이상 지연돼 오후 5시에 열린 사진전도 ‘위대한 김정일…’이라는 사진 설명과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 글씨로 인해 우리 정부가 난색을 표하자 개막식을 늦춰가면서까지 협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문제가 된 사진을 제외하고 행사를 진행시켰다.

6.15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남북통일미술전시회에서는 국보급 작품 7점이 선보였다. 국보급 작품으로는 인민예술가 정영만의 조선화 ‘강선의 저녁노을’등 조선화 4점과 인민예술가 정관철의 유화 ‘홍원풍경’등 유화 2점, 정현웅의 수채화‘누구 키가 더 큰가’가 전시됐다. 특히 수예작품은 대부분 꽃그림이었고 작품 제목은 ‘김정일화, 김일성화’였다.

이 외에도 60점의 조선화, 금니화 2점, 유화 12점, 조선보석화 5점, 출판화 8점, ?熾? 4점, 도자기 9점 등 총 107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북측여성계인사
북측 여성계 대표는 려원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중앙위원회 의장, 리영희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리동희 조선민주여성동맹중앙위원회 부장, 리순희 민화협 과장, 박영희 민화협 과장, 장연희 조선학생위원회 지도원, 안성희 조선민주여성동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예술단으로 참여한 여성은 리명순 문화성 과장을 비롯해 안무가 2명, 배우 27명, 의상사 1명 등 총 31명이다. 예술단들은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북측대표단은 대표단 55명, 예술인 43명, 기자 14명, 보장성원 4명 등 총 116명으로 구성됐다. 이 중 여성은 38명이다. 여성은 대부분 예술단원이고 여성계 핵심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은 점에 남측 여성계는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작년 평양에서 열린 8.15행사나 금강산에서 열린 6.15 행사에서 북측 언론인 중 여성카메라맨과 취재기자가 자주 눈에 띤 반면 이번 행사에서는 여성언론인단이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려원구 조국전선중앙위 의장
이번 북측대표단 중 언론의 초점을 가장 많이 받은 주인공은 단연 려원구 의장이었다. 려원구 의장은 몽양 여운형의 둘째딸. 지난 46?? 언니 인구씨와 함께 월북한 그는 현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 등 굵직한 직책을 맡고 있는 주요 인물이다.

려원구 의장은 서울 도착 첫 날 우여곡절 끝에 비공식적으로 부친의 묘를 참배했다. 려 의장의 참배 여부는 행사진행에 차질을 빚을 만큼 양측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행사 첫날인 14일 려원구 의장이 아버지 여운형의 묘소가 있는 우이동에 참배하러 간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이를 확인하려는 취재진과 추진본부 사이에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환영공연이 예정된 시간을 두시간이나 미룬채 북측대표단이 내려오지 않자 참가단들 사이에서는 려원구 의장이 기자단들을 따돌리고 비공개로 참배를 간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시됐다.

추진본부측에서도 이를 확인하려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채 떠났을 것이라는 애매한 답변만 줄 뿐이었다. 김종수 신부는 “아마 우리 국민들이 성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여론을 의식한 것 같다. 장관급 회담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이를 해결해줄 사람이 없어 해결이 늦었다”는 답변을 줬다.

일단 모든 행사가 시작하기도 전에 그리고 장관급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려원구 의장의 성묘가 화제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 양측이 모두 부담스러운 눈치가 역력했다. 성묘를 떠났는가라는 질문에 김종수 신부는 떠났을 것이다는 답변만 들려주고 우리측의 지나친 반응에 신변안전을 우려, 비공개로 성묘가 전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이튿날인 15일 개막식에 모습을 드러낸 려원구 의장은 노란색 계열의 투피스 차림에 시종 밝은 표정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버스에 승차한 려 회장의 좌석 유리창을 두드리며 기자가 프레스카드를 내보이고 인사를 하자 손을 흔들며 답했다. 그는 인터뷰 좀 하자는 말에 웃음으로만 답했다.

이날 오후 려 의장은 려운형 선생의 동생인 여운홍씨의 장손자 여인영씨등 11명의 혈육과 57년만에 상봉하는 감격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리영희 조선민주여성동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려원구 의장과 함께 북측 주석단에 포함된 리영희 조선민주여성동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인천공항 귀빈실에서와는 달리 상당히 굳은 표정이었다. 개막식장에 입장하는 리영희 부위원장에게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경직된 표정으로 아무말없이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북측 기자단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리영희 부위원장은 북측 여성 중에서도 샤프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는 커리어우먼의 대표적인 여성이다.

개막식장에서 북측 대표로 민족단합대회 연설을 한 리영희 부위원장은 “오늘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다”다는 인사말 이후 “우리 북녘 여성들이 동포애적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라는 말을 강조했다.

또한 “통일운동은 이제 어느 특권층의 독점물이 아닌 온겨레 범민족운동으로 힘있게 발전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통일과정에서 여성은 당당한 주인이 되어 여성운동사에 통일의 꽃으로 새겨지는 여성들이 많이 나오도록 북남여성들이 손을 맞잡고 통일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 나가자”고 외쳤다.

박영희 민화협 과장
그동안 남측 여성계와 꾸준히 접촉을 가진 북측 여성계 인사 중 한 사람이 바로 박영희 민화협 과장이다. 개막식장에서 기자가 인사를 하자 다소 놀란 표정이던 박영희 과장은 이내 웃음을 띠었다. 9월 남북여성대회에 대한 준비상황을 묻자 “준비해야죠. 준비 많이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박영희 과장은 또 “처음 방문한 서울에서 그동안 여러차례 만났던 남측 여성계 인사들을 다시 만나게 돼 아는 얼굴이 많이 생겨 좋습니다”라는 말도 전했다.

북측에서 남북여성통일대회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박영희 과장은 “내일 부문 상봉 모임에서 보시?? 알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